사막은 은혜의 땅 17

김태훈 0 2,364 2016.12.26 13:58

나는 둘째 부인과의 결혼도 실패로 돌아가면서 마음 가운데 미국에 모든 것을 걸어보기로 했다. 한국에서의 결혼 실패 그리고 삼청교육대의 악몽 등으로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인생이지만 새로운 땅, 기회의 나라인 미국에서 과거의 모든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새롭게 살기를 원했다. 미국으로 이민가는 공상과 망상 속에 있다가 미국에 있는 둘째 형에게 전화를 해서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 그런데 둘째 형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온갖 싫은 소리를 하며 나의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은 채 전화를 끊곤 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 국제전화를 한 번 하려면 큰 마음을 먹고 해야 할 만큼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 우체국에서 국제 전화를 신청해 놓고 한참을 기다려야 어렵게 전화가 연결되곤 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힘들게 전화가 연결되면 고작 실컷 욕이나 먹고 일방적으로 전화통화가 끊어지는 것이었다. 낙심이 되면 될수록 마음 가운데는 더욱 강한 오기가 생겼다.

 

"그래도 나는 꼭 미국에 갈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미국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 그 길을 반드시 열어 주실 줄로 믿는다."

 

나는 미국 이민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야말로 올인이었다. 형님이 나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든 말든 나는 계속해서 돈 이 좀 모아지고 시간이 될 때마다 전화해서 꼭 나를 미국으로 초청해 달라고 애원했다. 형님의 반응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 다. 그래도 나는 계속 편지도 보내고 안부 전화도 정기적으로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렇게 찰거머리처럼 형님에게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애걸복걸한 끝에 드디어 초청장과 재정보증서를 받게 되었다. 실제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까지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지만 나는 초청장을 받는 순간 이미 미국 땅에 도착한 사람처럼 흥분하고 가슴이 뛰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여권을 만들고 신체검사를 받은 후 드디어 미국 대사관에서 인터뷰 통지서를 받았다. 운명의 날이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아들 성민이에게 옷을 깨끗이 입히고 인터뷰 시간보다 2시간 일찍 미국 대사관에 도착했다. 혹시라도 중간에 길이 막혀 인터뷰 시간에 늦을까봐 하루 전부터 노심초사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인터뷰를 한 미국 영사는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백인이었다.

 

"미국에는 왜 가려고 합니까?"

 

"나는 미국에서 근면, 성실하게 새로운 이민자의 삶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부인과는 왜 이혼했습니까?"

 

나는 솔직한 대답이 가장 효과적인 대답이라고 믿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사실은 이혼한 아내가 두 번째 부인이고 성민이는 그 전 아내 사이에서 낳은 아이입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난 후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아내가 아이를 가끔씩 손찌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아이의 얼굴에 퍼런 멍이 들 정도로 구타한 것을 보고 아내와 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은 이혼하게 됐습니다. 저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꼭 미국에 가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습니다."

 

영사는 아들 성민이의 얼굴과 내 얼굴을 몇 번씩 번갈아 가면서 슬쩍 슬쩍 보더니 미국에 가서 잘 살라고 말하며 여권에 도장을 꽝 찍어 주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영사는 나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슬그머니 미소를 지어 보여 주었다. 함께 앉아 있던 성민이의 손을 꼭 잡고 미국 대사관을 걸어 나왔다. 이제 나는 다른 세상 으로 가는 것이었다.

 

'이제 다 잊어버리자. 빨간 모자의 악몽도, 나를 버리고 도망 간 성민 엄마에 대한 분노도, 그리고 멀쩡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개패듯이 무차별 구타하며 반병신을 만들어 놓기를 즐겼던 전두환 군사 정권에 대한 원한도…. 이제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 태평양 한가운데 더러운 배설물처럼 다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을 돌이켜 볼 때나는 그 모든 과거를 미국으로 건너오는 비행기 안에서 결코 버리지 못했다. 삼청 교육대의 악몽조차도 나는 지워 버렸다기보다는 마음 속 깊은 곳에 꼭꼭 덮어 두고 살아 왔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 난 후에 나는 알게 되었다. 완전히 치유되지 않고 덮어 두고 감춰 둔 마음의 상처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악령처럼 마음 한 가운데서 들고 일어나 의식과 무의식중에 나의 생각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나는 드디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거대한 비행기 동체가 몸을 부비는 듯한 둔탁한 소리를 내더니 어느 사이엔가 마법에 걸린 물건처럼 사뿐하게 땅을 떠난다. 비행기가 대기 위로 떠오르는 모습은 아직까지도 신비스럽기만 하다. 그 거대한 쇳덩어리가 많은 사람을 태우고 육중한 몸으로 사뿐하게 이륙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놀라운 느낌을 받게 된다. 비행기 창 밖으로 내가 살던 땅, 서울의 모습을 아련하게 내다 보았다. 자동차의 모습, 커다란 건물들 그리고 높은 산 등 모든 것이 콩알만큼 작게 보일 때쯤 내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 꿈이 아닌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는 정말 새출발이다. 미국 땅에서 새롭게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 보자.'

 

미국에 도착해서 둘째 형님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거의 한 달 동안 밥을 먹으러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아팠다. 미국에 오기 위해서 오랫동안 긴장했던 것이 한순간에 풀리면서 심한 열병을 앓았던 것이다. 몸에 열이 40도 이상으로 펄펄 끓었고 나는 그 아픈 가운데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신비로운 환상들을 보았다. 미국에 도착한 후 줄곧 40일 정도를 그렇게 끙끙 앓면서 지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40일 동안의 아픔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출산의 진통과 같은 것이었다. 아픈 몸을 떨쳐버리고 겨우 음식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속에는 이상한 욕구가 생겼다. 교회에 출석해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었다. 몸도 가누기 힘들고 살고 있던 곳의 인근 지리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한인교회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 교회는 순복음교회였는데, 처음 교회 예배실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나는 마치 전기에 감전되는 듯한 짜릿한 감동을 느꼈다. 목사님의 말씀은 귀에 쏙쏙 잘 들어왔고, 전에는 잘 이해가 안 되던 성경 말씀도 한눈에 들어오며 뜻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놀라운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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