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은 은혜의 땅 12

김태훈 0 2,580 2016.11.26 21:14

누님과 함께 고향에 내려와서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 없이 결핵 투병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째가 됐다. 나는 마음 한가운데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내가 왜 이렇게 젊은 나이에 병으로 고생을 하면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산송장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나. 아니 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반드시 회복해서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한번 잘 살아보자."

 

꼭 병에서 낫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나는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잠시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들여다보았던 성경책을 찾아서 다시 읽으며 그저 막연하게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고 나의 질병을 반드시 치유해 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었을까? 그렇게 어렵고 고통스런 가운데 하나님을 기억하고 창조자를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병에서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몸도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지고 치유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는 데 무엇엔가 이끌려 잠에서 깨어난 후 아무리 다시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 시간 가량을 이불 속에서 이리 저리 뒤척이다가 나는 한순간 이불을 박차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새벽 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고, 먼 동녘 하늘에서는 동이 틀 준비를 하는지 아주 희미한 빛이 밝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주위의 모든 것이 참으로 신선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상쾌한 기분을 느끼면서 깊은 심호흡을 했다. 바로 그때였다. 나는 깊은 심호흡을 하는 순간, 공기와 함께 어떤 액체 같은 것이 내 코로 들어와 폐부 깊은 곳까지 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느낌이 드는 순간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황홀하던지…. 그렇게 오랫동안 새벽 공기를 즐기며 서성이다가 동이 환하게 틀 무렵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잠을 청했다. 잠깐 아침잠을 자고 눈을 떴는데 몸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어, 이거 웬일이지, 역시 새벽 공기가 좋기는 좋은가 보다."

 

나는 누님에게 새벽에 있던 일들을 잠깐 이야기하고 아침 식사를 하는데 식욕이 엄청나게 생기는 것이었다. 어제까지만해도 특히 아침에는 밥을 한 숟가락도 떠먹기 힘들었는데 그날 아침에는 벌써 두 공기째 밥그릇을 비우고도 더 먹고 싶을 정도로 입맛이 돌기 시작했다.

 

"태훈아! 이제 네 병이 다 나았나 보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입맛이 다시 돌기 시작하는 것이 병이 나은 증거라고 하더라. 그동안 고생 많았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지겹도록 싸웠던 폐병이 그렇게 감기 떨어져 나가듯이 떨어져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 반신반의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내 몸의 확실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몸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고 그날 이후 누님이 밥을 해대기 힘들 정도로 밥을 많이 먹게 된 것이다. 새벽에 깊은 심호흡을 할 때 성령님의 치유 손길이 내 폐부 깊은 곳까지 어루만지시고 치유해 주셨다는 사실은 세월이 한참 흐른 다음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이었다. 아직 신앙이 자라기도 전이었고, 믿음이 마음 한 구석에 조그만 새싹처럼 싹트기 시작한 때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의 믿음과 마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2년 동안 지겹게 나를 괴롭혔던 폐병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주셨던 것이었다. 할렐루야! 치유의 경험을 한 이후부터 하나님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실존적인 존재였으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삶의 주인이 되었다. 그렇지만 내 일상생활이 하나님을 향해서 성화되는 방향으로 변화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분명히 내 마음의 중심에 자리잡고 계셨지만 나는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당시에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도 않았고 성화 과정에 대해서 배울 방법도 없었으며 특별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가면서 자연히 나의 삶은 다시 옛날의 습관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 후 서른 살이 넘어 강한 성령 체험을 한 후에야 비로소 성령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아 하는지 깨닫고 그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나의 폐병이 치유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치유의 기적으로 일어난 내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를 돌이켜 볼 때 누님의 희생이 없었으면 나는 이미 죽은 송장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누님은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면서 남동생이 병에서 회복되기를 빌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 리 둘째 누님에게 그런 마음을 불어넣어 주셔서 자신도 병으로 아픈 상황 가운데 동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둘째 누님은 내가 완전히 치유되는 것을 본 얼마 후에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오! 하나님!"

 

둘째 누님이 세상을 떠나던 날 나의 마음은 수백만 개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동안 유일하게 내게 사랑을 주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왜 하필이면 우리 둘째 누님을 먼저 데려가신 것일까. 하나님은 왜 내 병만 치유해 주시고 우리 둘째 누님은 치유해 주시지 않았을까? 아! 그토록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왔던 둘째 누님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다니…. 싸늘하게 식은 누님의 시신이 바로 옆에 있었지만 나는 누님이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길고 긴 통곡의 시간을 보냈다. 세월이 흐른 후 내가 주의 종이 되고 난 후, 기도할 때마다 내 마음 속에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온 것은 둘째 누님의 구원 문제였다. 누님은 남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살다가 병에서 치유되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도 갖지 못하고 죽었다. 우리 누님이 지옥에 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하나님! 어떻게 우리 누님 같은 사람들을 위한 당신의 구원 계획은 없는 것입니까? 하나님, 우리 둘째 누님도 당신의 자비와 은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그런 확신을 좀 주실 수 없을까요. 누님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던 것은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 볼 기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불쌍한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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