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은 은혜의 땅 2

김태훈 0 1,767 2016.09.17 19:05

개처럼 끌려가던 날


완전 무장한 군인들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다. 

"그대로 엎드리고 있어."

"고개 들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

조금이라도 몸의 움직임이 어눌해 보이면 가차 없이 개머리판이 날아왔다. 

여기저기서 수박 깨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나왔다. 나이 스무 살이 되도록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잔뼈가 굵어온 나였지만 이때처럼 극심한 공포를 느껴 본 적은 없었다. 폭력의 연속이었다. 바닥이 없어 끝없이 추락 하는 무저갱의 깊고 어두운 구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공포와 절망의 순간들이었다.

군인들은 팔을 뒤로 해서 북어포처럼 열 명의 사람들을 묶은 뒤 총부리로 사정없이 옆구리를 찌르며 우리를 버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곁눈으로 언뜻 보기에 10대 정도의 버스가 구치소 운동장에 정렬해 있었다. 우리를 구치소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 같기는 한데 당시 나는 내가 어느 곳으로 이동해서 얼마동안 있게 되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단지 뭔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비밀스럽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불안한 느낌만을 받고 있었다.

 

버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옆에 있는 사람의 머리에서는 조금 전에 개머리판으로 얻어맞은 곳에서 시뻘건 선지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땀방울과 섞여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릎 사이에 그대로 고개 처박고 있어."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동작을 하는 놈은 그 자리에서 죽는 줄 알아라."

버스 안에는 3~4명의 군인들이 나눠 타서 계속 거칠게 사람들을 다루고 있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운전수는 버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무심하게 버스를 운전하고만 있었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았지만 군인들이 지금 버스 안의 어느 곳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버스는 거침없이 달렸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허리를 구부려 고개를 무릎 사이에 처박고 있자니 허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도대체 이렇게 얼마나 더 가야 되는 것일까?'

허리의 통증과 함께 지난 며칠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이 슬라이드처럼 스쳐 지나갔다.

영등포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 고향 친구의 집을 찾아간 것은 단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공장에서 해고된 뒤 소식도 전혀 없고 해서 정말 큰마음을 먹고 간 길이었다. 밥이나 제대로 먹으면서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초췌한 얼굴의 친구가 누워 있었고 그 옆에 남동생 2명이 함께 있었다. 몸이 많이 아팠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걸려는 참에 동생들이 말을 막고 나섰다. 평소에 나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은 사이였는데, 마침 친구의 몸이 아픈 것이 내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삿대 질을 하면서 대드는 것이었다. 잠시 옥신각신하면서 말싸움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집 주변을 지나던 경찰 몇 명이 들이닥치면서 다짜고짜 수갑을 채웠다.

 

그날 저녁 나는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이면 당연히 훈방조치를 받을 줄 알았는데 난데 없이 구치소로 이감시켰다. 도대체 죄명이 뭔데 나를 구치소로 이감시키느냐 는 질문에 경사 한 명이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폭력에 공갈 협박을 하면서 먹고 살고 있나"라며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공갈협박?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치소로 이감되면서 나는 아내와 가족에게 전화 한 통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구치소 감방은 20명이 서로 어깨를 부딪쳐야 겨우 벽에 기대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 좁은 공간 안에 확실한 서열이 있었다. 감방 한쪽 구석에는 냄새가 지독히 나는 변기통이 있었는데 그 변기통 옆자리는 전과도 없고 죄목도 변변치 않은 그런 시원치 않은(?) 사람이 앉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당연히 오늘 새로 들어온 내 차지가 되었다. 가장 중앙에는 전과 19범이라는 고참이 앉아 있었다.

 

구치소 안에서는 매일 저녁마다 고참 죄수가 재판장이 되어서 모의재판이 열린다. 물론 심심풀이로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고참 죄수가 때린 형량이 실제 재판에서도 그대로 맞아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형무소를 그렇게 자주 드나들고 재판도 여러 번 받다 보면 거의 판사 수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인가 생각하며 실소를 지었다.

내게도 예외가 없었다. 그들은 나를 중앙에 앉혀 놓고 모의재판 심문을 시작했다.

"전과가 있는가?"

"없는데요."

"무슨 죄로 들어왔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잡혀올 때 무슨 일이 있었을 것 아닌가?"

"친구 집에서 말싸움이 벌어졌는데 지나가던 경찰이 들어와서 무조건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끌고 갔습니다."

"너도 별볼일 없는 놈이구만."

"여기 잡혀온 놈들 중에 너같이 어리숙한 녀석들이 수두룩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같은 감방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술 먹고 고성방가 하다가 잡혀 온 사람, 길거리에서 소변보다가 잡혀 온 사람, 장발머리 단속에 걸린 사람, 구멍가게에 외상값이 밀려 주인의 신고로 잡혀 온 사람, 몸에 문신 새긴 사람 등등이 많았다. 

과거 같았으면 경범죄로 걸려서 각서 정도 쓰게 하고 훈방 조치되었을 사람들이 무슨 영문인지 모두 구치소로 후송되어 정식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전과 19범이 되는 사람은 눈을 부릅뜨면서 나에게 한마디 훈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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