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은 은혜의 땅 6

김태훈 0 3,429 2016.10.16 08:02

생지옥이었던 삼청교육대에서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강제입소된 지 10여 일 정도가 지났을 때, 하루는 전체 입소자들 4백 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중대장이 "여기 예수 믿는 사람 있는가?" 하고 공개적으로 묻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교회에 다니는 신자도 아니었고, 더욱이 예수를 믿지도 않았지만 뭔가에 이끌리듯 손을 번쩍 들고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럼,너 기도할 줄 아나?"

"예."

"오늘부터 네가 매일 저녁마다 대표기도를 한다.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기도가 끝나면 모두 아멘을 복창한다. 알겠나!"

"예."

"자,그럼 한 번 대표기도해 봐."

 

그때 첫 기도를 어떻게 했는지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몇 마디 짧은 기도를 하는 동안 온몸에 진땀이 얼마나 홀러 내렸던지 입고 있던 군복이 흥건히 젖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날부터 나는 저녁 점호시간에 기도하는 동안만이라도 공식적으로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은 셈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기도를 마칠 때 유일하게 "아멘"이라고 입을 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삼청교육대 안에서 내가 대표기도 훈련을 받게 되리라고 과연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이다. 

 

그 당시 나는 거의 비슷한 내용의 대표기도를 계속 반복했다. 주로 회개의 기도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의 기도였다.

 

"하나님 아버지,참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 역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불신 가운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항상 원망과 불평과 짜증만을 토하며 우리들 멋대로 살아온 것을 회개합니다. 이 시간 여기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우리 400여 명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옵소서.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잘못한 것, 부모에게 잘못한 것, 아내에게 잘못한 것, 사회에서 잘못한 것 모두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회개합니다. 여기 잡혀 온 우리들은 죄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여 주시고 우리의 병든 심령을 고쳐 주시옵소서. 우리를 고쳐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때까지만 해도 교회와의 인연이라고는 어렸을 때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 절기 때마다 선물을 받기 위해 동네 주일학교에 나갔던 것이 내 신앙 경력의 전부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의 부족한 입을 통해서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기도와 치유의 기도를 하게 하셨던 것이다. 이는 참으로 기적이었다. 하나님을 완전히 알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한 적도 없었지만 대표기도를 하면서 나는 내면으로부터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알기 원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아마도 그 중대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것 같다. 자신이 비록 삼청교육대를 지휘하는 장교의 입장에 있기는 했지만 자신의 신앙에 비춰 마음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입소자들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기 위해 대표기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 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조교들이 하나같이 악랄하고 못됐던 것은 아니었다. 조교 가운데는 입소자들에게 인간적으로 동정을 표시하고 절대로 구타를 하지 않는 그런 신사적인 조교들도 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잠자고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건빵 한 봉지와 메모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메모를 읽어보고 나는 누가 그런 호의를 베풀었는지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훈련받는 것이 많이 힘들겠지만 당신이 기도하는대로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앞으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요. 조금만 더 인내해서 꼭 건강하게 가정으로 돌아가게 되길 바랍니다."

 

나는 그 메모 내용으로 미뤄 그가 기독교 신자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고 또한 누구일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선한 인상에 눈빛이 다른 조교들과는 많이 달랐던 그는 절대로 구타하거나 욕설을 내뱉는 일이 없었고, 내무반 점호시간에도 이 조교가 점호를 하는 날이면 가장 쉽게 넘어갔다. 물론 단체기합이나 구타가 없어서 좋았고 그는 늘 "이제 이곳에서 조금만 고생하면 곧 사회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용기를 불어 넣는 말을 해주곤 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이 세상에서 선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하면 그 조교의 얼굴을 떠올린다. 황량하고 삭막한, 그리고 공포 분위기만 조성되고 있었던 삼청교육대 안에서 그런 조교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찾은 것과 같은 기쁨이었다. 그리고 저런 양심적인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살아 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소망을 키울 수 있었다.

 

매일 저녁마다 하는 대표기도를 일주일 정도 했을 때였다. 어느 날 하루는 점심식사를 30초 만에 마치고 모두 다시 훈련장으로 집합했는데 소대장이 험악한 인상을 하고 고함을 질러댔다.

 

"너희들 중에 매일 대표기도 하는 놈이 누구냐?"

"예, 접니다."

"그래,너 이리 나와봐. 이 자식이, 너 여기가 무슨교회나 종교집단인 줄 알아?"

 

가슴 정중앙으로 돌맹이 같은 주먹이 날아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뒤로 나가 떨어졌는데, 다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일어나, 이 새끼야. 네가 하나님을 믿는 놈이면 지금 기도 열심히 해서 내가 너를 못 때리도록 한 번 해봐. 이 망할 놈의 예수쟁이야."

그는 평소에 기독교인들을 무척이나 혐오해왔고 점호시간에 대표기도를 한다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해서 언젠가 중대장이 없는 틈을 타서 대표기도 하는 놈을 잡아 해코지를 하려고 작정하고 있던 터였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자 곧바로 다시 가슴 정곡을 주먹 으로 가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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