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 며칠 전, 아멘넷의 이종철 대표께서 전화를 주셨다. 내 졸업에 맞추어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질문서를 이메일로 보내드릴테니 답을 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하겠다고 답을 드렸었다. 이 대표와 나와의 극히 사적인 이야기지만, 우리 둘은 지금껏 서로가 “NO”를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이 대표께 부탁을 드려도, 이 대표께서 나에게 무슨 부탁을 해도, 우리 둘의 대답은 늘 “YES” 였다. 이 말은, 서로가 서로에게 수용 가능한 부탁만을 해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YES” 를 해 놓고 생각해 보니, 이건 내가 너무 건방을 떠는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목사로 안수를 받은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신학교를 졸업하는 사람이 인터뷰를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논 끝에, 이 대표께서 작성하신 질문서를 토대로 하여, 내가 글을 쓰기로 하였다. 이 대표의 질문들 중에는, 신학교를 막 졸업하는 나의 입장과는 제법 거리가 먼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질문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교회와 교계가 갱신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하게 펼쳐왔던 사람으로서, 지금껏 고민해 왔던 생각들을 같이 나누기로 하였다. 전체적으로 제법 긴 글이 될 것이다.
종종 질문을 받았다. 늦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나이에(내가 1953년 생이다) 신학교에 들어간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섬기고 있는 생명나무교회(South River, NJ 소재) 때문이었다.
제법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내가 섬기고 있는 생명나무교회(www.tolchurch.net)는 길재호 목사님께서 자비량 목회를 하고 계신다. 자비량 목회를 하려면, 교회가 아닌 다른 곳으로부터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데, 길 목사님께서는 해외 출장이 잦은 교육 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계신다. 길 목사님께서 해외 출장을 떠나시는 때에는, 내가 가깝게 지내는 목사님들께 설교를 부탁드리곤 했다. 많은 목사님들께서 강사비를 일절 받지 않으시고, 통행료를 내시고, 기름값을 들여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설교를 해 주셨다. 김성민 목사님, 김용복 목사님, 박윤식 목사님, 사공태문 목사님, 신준희 목사님, 이계선 목사님, 이광수 목사님, 이순증 목사님, 이철수 목사님, 임다니엘 목사님, 정도영 목사님, 정영민 목사님, 채왕규 목사님, 하지청 목사님, 황정옥 목사님 등 15분의 목사님들께서 길재호 목사님의 출장 기간 중에 생명나무교회의 강단에서 말씀을 전해 주셨다. 신준희 목사님께서는 열 번이나 생명나무교회의 강단에 서 주셨다. 한분 한분께 큰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 내가 설교를 부탁드릴 수 있는 목사님들의 숫자가 한 분, 두 분, 줄어들기 시작했다. 새롭게 사역할 교회를 찾아 담임을 하게 되신 목사님도 계셨고, 한국으로 이주해 가신 목사님도 계셨고, 선교 사역을 위하여 뉴욕을 떠나 계셔야 하는 목사님도 생겨났다.
내가 모실 수 있는 강사 목사님이 더 이상 계시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재호 목사님께 의논을 드렸고, 길 목사님께서는 “신학은 집사님 같으신 분께서 하셔야 합니다. 저는 쌍수를 들어서 환영합니다. 다만… 많이 힘드실 집사님이… 많이 걱정이 됩니다.” 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니까… 내가 신학교를 가게 된 동기를 한마디로 줄여서 답을 한다면, “길재호 목사님께서 강단을 비우실 경우에 대신 강단을 지킬 준비를 하기 위해서” 였다.
길재호 목사님께서 생명나무교회의 강단을 지키지 못하실 때, 길 목사님 대신에 강단을 지키려고 신학교엘 들어갔는데, 내가 신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조경윤 목사님을 생명나무교회에 보내주셨다. 조경윤 목사님께서도 자비량으로 생명나무교회를 섬기고 계신다. 내가 신학교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길재호 목사님께서 강단을 비우실 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함이었는데, 그것은 내 생각이었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모르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은 모두 나의 생각일 뿐이다.
길재호 목사님을 모시고, 몇몇 교우들과 함께 생명나무교회를 개척했던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의 생각이나 자세가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호칭이 집사에서 전도사로 바뀌었고, 앞으로 강도사, 목사로 바뀌게 됨에 따라, 나의 역할에도 일정 부분 변화가 있을 것이다. 몇 가지의 역할이 추가될 것이다.
작년 9월부터 “이제 전도사님께서도 설교를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는 말씀을 길재호 목사님과 조경윤 목사님께서 하시기 시작했다. “설교를 해 주실 강사 목사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전도사인 제가 설교를 하는 것은 교우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목사로 안수를 받은 후에 하겠습니다.” 라고 답을 드렸는데, 조경윤 목사님께서 종종 압력(?)을 넣으신다. “강도사 되시면 설교를 시작하시”라고… “설교 능력은 실전(?)을 통하여 향상되는 것” 이라고… 길 목사님께서도, 조 목사님께서도 모두 나를 배려하셔서 하시는 말씀들이다. 참으로 감사하다!!!
“그 사람 목사가 되더니 변했어!” 라는 이야기들을 종종 한다. 사람은 역할이 바뀌면 변해야 한다.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생각도, 행동도 변화가 되어야 한다. 헌데, “그 사람 목사가 되더니 변했어!” 라는 말 속에는 그런 긍정적인 의미의 변화, 바람직한 변화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의 변화, 되바라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런 변화는 하나님께서도, 교우들도 원하지 않는다.
목사가 된 후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교회를 섬기고, 교우들을 섬기고, 동역자들을 섬기고 싶다. 그렇게 할 것이다. 목회자 같은 평신도가 되고 싶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바람이었다면, 이제는 평신도 같은 목회자가 되고 싶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 나를 쓰시려고 택하셔서 공부하게 하시고 배우게 하시고, 많은 것들을 체득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앞 길도 인도하여 주시리라 믿는다.
나는, 단 한번도, 목회자들에게 사례를 해서는 안 된다거나, 목회자들에게 사례비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소득이 없는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못하면, 교회가 사례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뭘 먹고 살겠는가? 무슨 돈으로 생활을 꾸려 나가겠는가?
교회가 목회자들에게 사례비(난 이 표현을 싫어한다. 생활비라는 표현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를 지급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목회자들이 돈에 구애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하는 일은, 교회의 책무이기도 하다.
문제는 교회의 재정적인 형편이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지급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하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헌금의 액수가 미미하여, 교회의 렌트비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교회들이 부지기수이다. 렌트비를 감당치 못하는 교회가, 목회자의 생활비를 어떻게 지급하겠는가?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헌금 수입, 그러다 보니 교인들을 들볶는 목회자들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이런 교회들, 교회의 재정 수입이 최소한의 지출 수요에도 미치지 못하는 교회들은, 교회가 존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렌트비는 지급해야 한다. 렌트비를 지급하고 남는 돈이 없는 교회는, 목회자의 사례비를 지급할 수가 없다. 먹고 사는 데에 필요한 돈이니 반드시 지급해야 하지만, 돈이 없는 걸 어쩌겠는가? 이런 교회들은, 교회가 목회자의 생활비를 지급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목회자가 스스로의 생활비를 벌어서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한다.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런 교회들은, 한시적으로라도, 목회자가 자비량 목회를 해야 한다.
생명나무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회자들은, 위와는 다른 이유에서 자비량 목회를 하고 있다. 길재호 목사님도, 조경윤 목사님도, 생명나무교회를 섬기기 전부터 “직업”을 가지고 계셨다.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사업장이나 직장에서, 필요한 돈을 벌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새로운 모습의 교회에 관하여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 목회자건, 평신도건, 각자가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어 쓰고, 교회의 지출을 극소화하고, 그렇게 해서 남게 된 돈을 선교와 구제에 쓰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약속에 따라, 목회자건, 평신도건(우리 교회의 반주자도 사례를 받지 않는다), 교회로부터 어떠한 보수도 받지 않고,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것들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우리가 자비량으로 교회를 섬긴다고 해서, 우리가 다른 분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해 본 적이 없고, 그런 생각은 절대로 가져서도 안 된다. 다만,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조금은 더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다. 그래서, 작은 사랑이라도 더 많은 분들과 같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이, 자비량 목회에 관하여, 나와 생명나무교회를 곡해하고 있던 분들에게,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