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면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아무런 통증없이 밤을 보낼 수 있어 감사했다. 밤 사이에 2번인가 3번 간호사가 와서 혈압 등을 체크하고, 안티바이러스약을 주사해 주었다.
아침 일찍 정창수 목사님께서 병실로 찾아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고, 여러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뉴저지은퇴목사회 회장 하사무엘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병원으로 찾아 오시겠다고 하셨다. 극구 만류했다. "내일 쯤 집 근처에서 차라도 하시자!"고 하셨다. "몸의 컨디션을 보아 연락을 드리겠다"는 답을 드렸다.
승진이가 아침 식사와 음료를 사 가지고 왔다. 어제도 종일 고생했는데, 오늘도 수고를 한다.
10시 반이 조금 넘어 오종민 목사님께서 찾아 오셨다. 정창수 목사님께서는 다음 행선지를 향하여 출발하셨다.
물리치료사로부터 걷는 훈련을 받았다. 물리치료사가 지팡이 대신 한 손만으로 사용이 가능한 Hemi One-Arm Walker를 추천해 주었다. Hemi One-Arm Walker를 건네 받고, Discharge Order를 받으면 퇴원이 가능했다. 헌데... Hemi One-Arm Walker가 병원에 없다는 것이었다. 퇴원을 하고, Hemi One-Arm Walker는 집으로 배달해 주기로 했다.
"허리를 좌우로 흔들어서는 안된다. 허리를 90도 이상 굽혀서는 안된다. 우유 1갈론 이상의 무게를 들어서는 안된다"는 특명(?)을 받았다. "운전도 불가" 란다. 운전을 할 때 허리가 좌우로 움직이기 때문이란다. 8월 22일(화) 오전에 Dr. Rhim이 OK라고 말할 때까지, 위의 세 가지는 반드시 지켜야 한단다. 당분간 '집안에 갇혀있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
퇴원을 했다. 병원비가 얼마가 나왔다는 이야기도 없다. 병원에서 제공해 준 휠체어를 타고 병원 밖으로 나와 승진이의 자동차에 탔다.
집에 오니 2시 15분이었다. 내 수술을 위하여 기도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드렸다.
임다니엘 목사님 내외분께 전화를 드렸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밝고 씩씩했다. 감사하고 감사했다. 임 목사님이 내 친구인 것이 감사했고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목사님!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슬퍼하지 말자!" 라는 나의 말에 "그래! 괜찮아! " 라고 답하셨다. 내가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사귀어,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온 고마운 친구다!
3시 쯤에 병원 직원이 Hemi One-Arm Walker를 배달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