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7년 전의 일이 되었다. 대학 1학년 때, 2학기 중간 고사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봉천동에서 85번 성북동행 시내 버스를 타고 새벽에 출발하여, 명륜동에서 정릉행 2번 버스로 갈아타고 학교 앞에서 내렸었다. 굳게 닫힌 교문 안쪽에 "당분간 휴교함" 이라는 게시물이 보였다.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긴급 조치가 단행된 날이었다. 그때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용어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적 민주주의", "통치 행위", "유정회", "중선거구제", "어용학자"... 우리 - 법학을 공부했거나 하고 있는 - 는 갈봉근, 한태연, 박일경, 문홍주 등을 어용학자로, 김철수 교수를 그래도 꼿꼿한 헌법학자로 불렀었다.
뉴욕에 다녀왔다. 귀한 목사님의 초대로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현안'을 바라보는 생각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난 그 목사님의 인품을 존경한다. "법무부는 법무부의 일을, 검찰은 검찰의 일을 한다"는 말이 요즘 한국 사회에 널려 있다. 그 목사님은 그 목사님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하면 된다.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다르다. 나는 나에게 주신 사명에 따라, 나에게 주시는 감동에 따라 기사를 작성하고 칼럼을 쓴다. 내가 그 목사님의 생각을 존중하듯이, 그 목사님께서도 나의 생각을 존중해 주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