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머무는 날이면 늘 그러는 것처럼, 오전 6시에 일어났다. 7시에 설렁탕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 자동차에 실었다. 통증 병원에 도착하니 9시였다. 진료를 받고나니 한 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었다. 박상천 목사님의 모친 고 박춘자 권사님의 발인 예식이 오전 11시에 예정되어 있었다. "어디 계세요?" 라고 여쭈었더니 "노회 임원회 중입니다" 라는 답을 보내 주셨다. 다른 분께 메시지를 보냈더니 "오늘은 약속이 있습니다"라는 회신을 보내 주셨다. 또 다른 분께 메시지를 보냈더니 바로 전화를 주셨다. "11시까지 교회로 가겠습니다" 라셨다. 한 시간을 나 혼자 보내야 했다.
통증 병원에 마냥 앉아 있기도 뭣하고 해서 소망장로교회로 향했다. 박상천 목사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미리 와 계신 분들 모두 검정색 양복에 흰 와이셔츠, 검정색 넥타이 차림이었는데, 나는 밤색 상의에 노타이 차림이었다. 뉴욕에 취재를 가면서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점심 식사는 "세고비아"라는 이름의 남미 식당에서 했다. 정일권 장로님께서 RCA 팰리세이드 노회 소속 임원 목사님들을 대접하는 자리였는데, 나도 함께 했다. 정 장로님께서 뭔가(?)를 고르시자 내 앞에 앉으신 목사님께서 "Me, too!" 하시기에 난 "Me, three!" 했다. "Me, three!" 라는 표현은 한인 목사님들이 자주 가는 Diner에 근무하는 남미계 여직원이 농담처럼 하는 표현이다. 음식을 주문하면서, 한국 목사님들이 "Me, too!", "Me, too!"를 연발하니까, 우리릃 웃기느라고 "Me, three!", "Me, four!" 하면서 깔깔대곤 한다.
점심 식사를 하고, Edison에 들러 이발을 하고, 집에 오니 5시 반이었다. 몸에 기운은 하나도 없고, 눈은 감겨 오고...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