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흥수와 복(福) 자(字)

김동욱 0 101 05:26

제목: 흥수와 복(福) 자(字)

 

글: 故 조정칠 목사

정리: Esther Kim 기자

 

누구를 위해 쓰는 글인지 밝히지 않는 것은 누가 읽어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없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성경에는 ‘아이들’로 되어 있는 것을 편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인지, 어떤 수준의 아이들인지 가늠이 잘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뜻이 그렇게 모호하실 리가 없다. 누구든 ‘아이들’을 예수님의 생각과 일치하도록 구체적으로 쓸 수 있게 편집의 기회를 열어 주셨다고 이해하였다. 그래서 완벽하게 ‘아이’로 편집하여 추호의 혼란도 없게 하였다.

 

아이 A가 공을 던지면 아이 B가 넙죽 받는다. 그러면 무리가 없는 균형이 된다. 그 두 아이는 누구일까? 두 아이는 추첨으로 정할까, 시험으로 정할까? 결코 그럴 수는 없다. 한 아이는 하나님께서, 또 한 아이는 예수님께서 골라 놓으시면 완전한 두 아이가 된다.

 

하나님께서 고르신 아이의 이름은 홍수였다. 홍수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아이였다. 홍수의 집안에도 교인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고르신 아이는 ‘아무개’였다. 홍수와 아무개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아무개의 온 가족은 기독교 신자였다. 홍수의 가정은 정반대였다. 그런데도 둘은 절친한 친구였다.

 

어느 날 홍수가 아무개에게 물었다.

 

“너는 왜 나에게 교회에 함께 가자고 말하지 않느냐?”

 

아무개는 빙그레 웃기만 하고 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홍수는 아무개의 그런 표정이 참 좋게 느껴졌다. 그러고도 둘은 한결같이 잘 지내고 있었다.

 

며칠 후 홍수가 또 물었다.

 

“나도 교회에 한번 가 보면 안 되느냐?”

 

아무개는 “너 참 좋은 생각을 했구나” 하며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선뜻 “예스”라고 하지는 않았다. 홍수의 표정은 기분이 아주 좋은 것처럼 변했다.

 

그러던 중 며칠 후, 홍수는 아무개의 교회를 찾아갔다. 홍수는 교회 바깥에서부터 안까지 촘촘히 살펴보았다. 그런 후에 조용히 물러갔다. 홍수가 교회에서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알 수 없었다.

 

한참 지난 어느 날, 홍수가 입을 열었다. 홍수는 아무개에게 말했다.

 

“너희 교회는 참 깨끗하고 정리가 잘되어 있더라.”

 

그런 다음 홍수는 조금 실망스러웠던 점을 털어놓았다. 홍수의 말은 친구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너희 교회가 다 좋던데, 어디를 돌아보아도 하나님의 흔적은 보이지 않더라.”

 

홍수의 입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오자 아무개는 어안이 벙벙하여 웃기조차 힘들었다.

 

며칠 후 홍수는 밝은 표정으로 자기 말을 듣고 화내지 말아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홍수의 말은 화낼 일이 아니었다.

 

홍수는 말했다.

 

“너희 교회 곳곳에서는 하나님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어. 그렇지만 너에게 실망하지는 않았어. 너만 보면 하나님께서 어디선가 너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져.”

 

누구에게 들은 적도, 배운 적도 없는 홍수가 갑자기 하나님이라는 말을 꺼낸 것만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아무개는 홍수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필요하셔서 홍수를 붙잡으신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이들의 정신은 맑아지고 마음은 넓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을 모르는 친구가 없었고, 친구들끼리도 서로 느끼며 감동하고 감사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홍수의 가족들은 홍수의 상태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홍수를 보호하신 것이었다.

 

그럴 즈음 홍수에게 큰일이 생겼다. 체육 시간에 기마전 시합이 있었는데, 홍수가 날렵한 장수 역할을 맡아 잘 싸우고 있을 때 기습을 받아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홍수는 심한 골절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약 4주 동안 치료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생각지도 못한 입원 신세를 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때 전국의 병원에 비상이 걸렸다. 별안간 폐결핵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하고 전염병이 확산되어, 병원마다 입원실이 만원이 되었다. 환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홍수는 급기야 자택으로 퇴원 조치되어 그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난리도 그런 난리는 처음 보는 대란이었다. 집으로 가서 지내는 것이 낫다고 하여 퇴원했지만, 홍수의 처지는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병문안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집안 식구들과 식사조차 같이할 수 없어 밥을 방에 들여놓아야 했다. 환자 혼자서 식사를 해야 하는 처참한 지경이 되었다.

 

그러던 중 친구 한 명이 홍수의 집을 찾아갔다. 바로 아무개였다. 그는 홍수의 집 구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옆문으로 몰래 들어갔다.

 

홍수가 무척 반가워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위험한 전염병 환자가 있는 곳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들어간 아무개의 우정은 기특하면서도 위험했다. 그 위험을 감당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홍수는 그 상태에서 자신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찾아온 친구에게 아주 중요한 사명을 부탁했다. 그것은 홍수 개인과 관계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가 꼭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은 아무개 한 사람밖에 없다고 했다. 그 일은 참으로 귀하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홍수는 말했다.

 

“우리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신데, 그 ‘복’ 자를 잘못 써 왔어. 바르게 써야 하나님의 거룩하신 존엄에 합당해. 지금의 ‘복’은 소리만 복일 뿐, 그 내용은 복과 아무 상관이 없는 맹목적인 조합일 뿐이야. 한 점도 참된 복과 상관이 없어. 복은 네 자로 되어 있어. 이십사 자는 아무 복도 아니라는 뜻이야.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참된 복을 기독교인 가운데 누가 되었든 만들어야 해.”

 

그리고 아무개에게 간곡히 말했다.

 

“누가 하겠어? 네가 하면 돼. 너는 할 수 있어. 꼭 해낼 거야.”

 

홍수는 울먹이지도 않은 채, 오늘 밤에 천국에 갈지도 모른다며 아무개에게 그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라고 재촉했다.

 

워낙 완강하게 당부했기에 아무개가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홍수는 말했다.

 

“아니야. 알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네가 하겠다고 해야 해. 그래야 참된 ‘복’을 쓸 수 있어. 오늘 밤이 아니면 내일 아침에 떠날지도 몰라.”

 

홍수는 시간이 없다며 재촉했다. 홍수의 말은 너무나 절박하고 진실했다.

 

“너는 충분히 해낼 수 있어. 그렇게 해낼 사람은 너밖에 없어. 알았지?”

 

마침내 아무개가 하겠다고 대답했다. 홍수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홍수는 천연덕스럽게 강조했다.

 

“나는 죽어서 다시 태어나면, 그때는 홍수가 아니라 너로 태어날 거야.”

 

홍수가 다른 사람처럼 변한 것은, 홍수 속에 또 다른 홍수가 하나 더 있는 것처럼 또렷했다.

 

홍수는 이제 시간이 다 된 것 같으니 어서 자기 곁을 떠나라고 이별을 고했다. 몸을 뒤로 젖히면서 아무개에게 손을 저으며 말문을 닫았다.

 

아무개는 자리를 떠나면서 이별의 손을 흔들었다. 그 뒤로는 아무도 홍수의 소식을 전해 주지 않았다.

 

홍수는 끝까지 슬픈 기색이 없었다. 어디에 잠시 다녀올 사람처럼 정다운 표정이었다. 홍수가 새사람으로 변하여 ‘새로운 홍수’로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이 또렷하게 가슴속에 살아 있었다.

 

그 후 홍수 주변의 소식은 신기할 정도로 적막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홍수의 장례 소식이 들렸다. 가족들만 참여하여 장례를 치를 모양이었다.

 

아무도 우는 곡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홍수와의 이별은 슬펐으나, 그의 죽음은 성스러웠다는 소식만 전해졌다. 그 후 전해진 소식은 장례가 마무리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그 뒤로 홍수의 친구들은 아무런 모임도 갖지 않고 지냈다. 각자 자기 학습에만 열중했다. 홍수의 이야기는 땅에 묻힌 홍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로 올라간 홍수의 이야기로 친구들 사이에서 간간이 오가는 이야기가 되었다.

 

홍수의 부탁을 받은 친구는 홍수가 남긴 숙제를 다하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복’ 자를 쓰려고 여러 서예 학원을 다니며 서예 공부에 힘을 쏟는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러나 참된 ‘복’ 자는 서예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기존의 복 자를 대신할 새로운 도안이 있어야 했지만, 그런 것이 쉽게 있을 리 없었기에 시간만 흐르고 또 흘렀다.

 

그럼에도 아무개는 한순간도 새로운 참된 ‘복’을 찾으려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어느덧 홍수와 이별한 지 50년이 되었다.

 

그동안 아무개는 홍수 덕분에 서예 공부를 했다. 미숙한 솜씨로 개인 서예전을 열기도 했으며, 약속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지난 50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지막에는 반드시 참된 ‘복’ 자를 쓰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묻고 배울 수도 없었고, 그 일을 가르쳐 줄 스승도 아무에게도 없었다. 결국 혼자서 끝을 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어느 초등학생을 위한 서예 학원을 잠시 빌려 세 시간 동안 쓰고 또 썼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다”라고 할 만한 ‘복’ 자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그날 쓴 수십 장의 화선지를 모두 휴지통에 버리고 말았다.

 

아직 기회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희망을 안고 물러나려는데,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써서 버리고 또 버린 휴지통에서 한자의 ‘복’ 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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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23년 11월 28일(화) 오전 11시 쯤에, 이호수 집사님과 함께 Arbor Ridge Rehabilitation & Healthcare Center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조정칠 목사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50분 정도를 목사님과 함께 머물렀는데, 목사님께서 두 권의 공책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김 목사님! 읽어 보시고, 복음뉴스에 실어도 괜찮겠다 싶으면..." "알겠습니다." 그날 건네주신 원고를 계속해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7월 12일, 목사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 이 공책에 담겨 있는 글이, 목사님의 유고(遺稿)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저희들 곁을 떠나신 지 1주년에 밎추어, 목사님께서 저에게 주신 유고(遺稿)를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눕니다. 목사님께서 주신 원고에는 글의 제목이 없었습니다. 글의 제목은 제가 붙였습니다.

 

공책 2권에 담겨있는 글의 내용은 거의 같았습니다. 살아계셨을 때, 저에게 들려주셨던 이야기였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쓰신 것은, 우리들 모두에게 꼭 들려주고 싶으셔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다"는 흥수의 이야기는, 친구 아무개에게 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교회에 다니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그날 공책을 건네 주시면서, 목사님께서는 저와 이호수 집사님을 위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희 두 사람을 (목사님의) "혈육같은 형제"라셨습니다.

 

목사님의 가르침이 자꾸만 생각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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