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反省文)

김동욱 0 256 01.12 20:24

제목 : 반성문(反省文)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반성문을 자주 쓰게 했다. 내가 썼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반성문을 써 본 적은 없다. 내가 모범생이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난 장난꾸러기였고, 또래 학생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못된 짓을 많이 했었다. 내가 반성문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걸렸을 때도 있었지만 그냥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는 수시로 가방 조사를 했었다. 가방 안에 학생들이 소지해서는 안되는 물건들이 들어있는지를 조사해서 압수하곤 했었다. 그런데, 내가 속해 있는 반은 가방 조사를 하지 않았다. 나 때문이었다. 나는 중 1 때부터 담배를 피웠었다. 내가 중 1때 반장이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알고 계셨다. 가방 조사를 하면, 내 가방에서 담배와 치약 - 담배를 피운 다음에 냄새를 제거하는 데 필요했다 - 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내가 무기 정학 처분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예 가방 조사를 하지 않으셨었다. 

 

중 2때였다. 동급생들 10여 명과 함께 극장엘 갔었다. 다른 반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학생들끼리 극장에 갔다가 단속에 걸리면 무기 정학 처분을 받던 시절이었다. 입장권을 구입해서 극장 안으로 들어 갔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단속을 나와 계셨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선생님께서는 나를 못본 척 하시고 돌아 서셨다. 어떡한다? 그냥 선생님을 못본 척 해? 그럴 수는 없었다. 돌아서 계시는 선생님께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아! 이 놈 봐! 이 놈도 극장에 다니네?" 하시더니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이셨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영화를 보러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입장권을 구입해서 들어 왔는데 그냥 나가기도 그렇고...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이 놈들아, 돈 내고 들어 왔으니 영화는 봐야지!" 하셨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만사태평인데, 친구들은 좌불안석이었다. "걱정하지 마! 아무 일 없을거야!" "네가 어떻게 알아?" "이 자식들아, 내 말을 믿어!" "........" "반장인 나를 무기 정학시키면 담임 선생님 꼴이 뭐가 되겠니? 니들 오늘 나랑 같이 걸린 게 다행인 줄 알아!" 그랬다. 우리 모두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반성문 한 장 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반성문을 쓰게 하려면, 우리를 무기 정학에 처해야 하니까...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가까운 분들에겐 성탄 인사를 드렸었다. 새해가 되면 신년 인사를 드리곤 했었다. 헌데, 지난 성탄절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새해를 맞아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바빠서라는, 시간이 없어서라는, 써야할 기사가 많아서라는 핑게를 들이댔었다.

 

오늘 평생동안 한번도 쓰지 않았던 반성문을 썼다. 마음 속에 난생 처음 반성문을 쓰면서, 반성문이라고 하는 게 사람을 쑥스럽게 만드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계면쩍은 글은, 이런 불편한 글은 다시 쓰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내가 그런 반성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써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마다 하는 회개가 반성문이었다. 사람에게 쓰는 반성문을 쓰는 데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 왜 하나님께 쓰는 반성문은 그렇게 가볍게 생각해 왔을까? 하나님이 너무 넉넉한 분이셔서? 하나님이 아버지셔서? 

 

하나님께 쓰는 반성문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이유가 내가 하나님께 짓고 있는 죄들을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가 아닐까? 그런 것이라면, 미루지 말고 반성문을 써야겠다.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로그인"하지 않고 글쓰기 가능 김동욱 2017.01.04 843
63 시간을 지키고, 빼앗지 말자 김동욱 04.12 187
62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 김동욱 04.03 211
61 세례자(洗禮者)가 아니라 수세자(受洗者) 김동욱 04.03 159
60 복음뉴스 창간 2주년을 맞으며 김동욱 01.23 226
열람중 반성문(反省文) 김동욱 01.12 257
58 2018년 한 해를 돌아보며 김동욱 2018.12.27 257
57 뉴욕 목사회 부회장 선거는 '연필 굴리기' 김동욱 2018.11.23 376
56 회장 자리를 바라기보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길 바란다 김동욱 2018.10.09 338
55 해야 할 말, 하는 게 좋을 말, 그런 말만 하자! 김동욱 2018.10.05 384
54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일 김동욱 2018.10.05 359
53 경적(警笛)은 상황이 생기기 전에 울려야 김동욱 2018.10.05 365
52 주보와 순서지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김동욱 2018.10.05 332
51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복음뉴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동욱 2018.10.05 313
50 오찬(午餐)은 만찬(晩餐)이 아니다 댓글+4 김동욱 2018.01.18 971
49 "바자회를 해도 되는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김동욱 2017.12.01 723
48 "카톡! 카톡!' 이제 제발 그만!!! 김동욱 2017.11.11 784
47 독선과 불통으로 실패한 개혁 댓글+1 김동욱 2017.10.25 1165
46 회개와 다짐이 있는 '영적 대각성 집회'가 되게 하자! 댓글+1 김동욱 2017.10.25 787
45 루터는 여행을 가지 않았습니다 김동욱 2017.08.11 732
44 밥은 먹는 사람 입맛에 맞아야 김동욱 2017.08.10 719